캔드릭 라마 슈퍼볼 2025 | 주류 힙합, 그리고 개인적인 것들의 시대
저는 힙합을 잘 즐길 수 있는 타입은 아닙니다. 멜로디 없이 어투로 이루어진, 리듬에 맞춘 소리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고, 다른 장르의 음악적 요소에 비해 잘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어떤 것이 잘 하는 힙합인지, 쇼미더머니에서 터뜨리는 심사위원의 감탄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등.. 비교 대상 자체가 없었죠. 그러다 보니 선뜻 손이 안갔달까요..
그러던 제가 하루에도 두세번 씩 보는 영상이 하나 있어요. 그건 바로.. 얼마전 있었던 캔드릭 라마의 슈퍼볼 하프타임 쇼! 음.. 이유는 말로 표현하기 좀 어려워요. 확실한 것은 기존 슈퍼볼 공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자, 이제부터 어떤 점이 어떻게 달랐는지 이야기해볼게요.
화려하지 않은데, 계속 보게 돼요.
슈퍼볼 공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무대 바닥이 폭발하거나, 레이저와 불꽃이 난무하는 장면들.
흑인 엉클 쌤으로 분장한 사뮤엘 잭슨이 중간중간 연기를 했다는 것. 미국 국기를 형상화한 안무가들이 춤으로 미국적인 것을 표현했다는 것. 이 것 말고는 세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게 다는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까딱거리며 리듬을 타는 캔드릭의 몸짓, 드레이크의 전 여친 세레나 윌리엄스가 밟는 갱스탭인지 문화인지 모를 그들만의 바이브가 넘쳤던 스탭, 드래익스의 또다른 전여친(??)이었던 SZA의 쩔어버리는 보이스과 어우러지는 캔드릭 라마의 랩핑.. 분명 그게 전부인거 맞는데, 이상하게도 이 심플한 무대가, 발끝은 까딱거렸고, 입가는 웃음으로 씰룩거렸던 승자의 미소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무한 반복해서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되리어 밋밋함이 차별화의 요소였을지.. 이런 걸 정성적 표현으로 "진정성이 느껴진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다른 말로 '흑인들의 판소리'인 힙합이 대중의 음악이라면 이런 느낌일지.. 정말이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 느낌은 존재했어요. 저는 이것을 '코드'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너무나 개인적이면서, 공적인 공연이었어요.
캔드릭 라마의 슈퍼볼 공연을 보고 난 후, 그의 디스전을 먼저 찾아봤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둘 사이에서 오갔던 가사들. '아, 이제 알겠네.' 한 순간, 생각해보니 너무 사적인거에요. 미성년자를 어쨌고, 와이프가 어쩌고 저쩌고, 온갖 찌질한 조롱으로 가득한 노래였어요.
#SNS에서의 표현이 너무 웃겼어요. "가장 긴 드레이크의 장례식"이었다고.
그런데 샘플링과 비트에, 잘 얹어진 가사에, 수억의 시청자 앞에서 드레이크 욕하면서 씨익 웃는데 이렇게 아드래날린이 폭발할 일이었는지 몰랐어요. 시종일관 '이 노래 할까 말까 할까 말까?'하면서 놀리다가 정말 해버리는 느낌?.. 좀 길게 보면 이 장례식의 시작은 24년 이 노래 나왔을 때부터 였을지? 그래미 5관왕때부터 였을지?.. 어찌보면 이런 개인적인 것들이 진정성과 연관지어지는 '코드'가 아닐까요?
방탈출 장치 만드는 장인 '캔드릭 라마'라고 불러주세요.
제가 좀 알아보니 캔드릭 라마는 본인의 음악 안에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를 많이 숨겨놓는 타입이더군요.
#방탈출카페 장치 만드는 장인 같은 느낌.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보다 볼때마다 숨겨진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저는 미국과 아주 먼 곳에서 십여분의 하프타임 쇼 액기스를 회사 출퇴근하는 길을 오며가며 유튜브로 반복해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유튜브의 수혜자!
🏀 드레이크의 2명의 전 여친 → SZA, 세레나 윌리엄스
🎤 캔드릭 라마의 목걸이 'a' → 드레이크의 미성년자(?) 취향 의혹 조롱 등.. 알면 알수록 많은 것들이 보였을 거에요.
👨🦰 하지만, 제가 말하려는 방향은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에 있지 않으므로 잘 정리된 벅스라이프님의 유튜브 콘텐츠(아래)를 같이 올려드리..려고 했지만, 아래와 같이 저작권 문제가 있네요. (찾아서 봐주세요 ㅠ)
힙합, 개인적인 것, 하위문화가 주류가 된 시대
캔드릭 라마는 슈퍼볼 무대에 선 첫 래퍼 솔로였다고 해요. 흑인들의 하위문화장르였던 힙합은 이젠 가장 대중적인 이벤트에서 중요한 순간을 장식할 만큼 성장한 장르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노래하는 노래는 또 너무 개인의 것이에요. (마치 500만의 유튜버가 말하는, 어제 뭐먹었나의 이야기가 1000만 뷰를 기록하는 그런 느낌) 그런데 그것 또한 문화가 되어버려요.
저도 본능적으로는 대세의 흐름에 이끌리듯 유튜브를 찾아보았던 거니까, 감각의 영역이었던 셈이에요.
이제 더 이상 비주류와 주류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어요. 주요 키워드를 찾을 때에도 우리는 '롱테일'을 감안해요. 어떤 채널로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던질 수 있어요. 너무 크게 외치지 않아도, 그저 자기만의 리듬을 지키다보면 뭐라도 썰어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게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몰라요.
오늘도 몇억명 앞에서 미운털 박힌 드레이크 욕하는 캔드릭 라마 노래 한번 더 듣고 잠에 들랍니다. 캔드릭은 본인의 공연에 미국과 미국대통령과 주류문화와 드레이크를 드레이크 전여친 둘과 함께 조롱했지만, 조롱도 롱이죠.(?) 미국장은 그만 보시고,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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