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같아. 'CG'같아의 용법
우리는 종종 예쁘고 깜찍한 외모를 보고 “인형같아!”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칭찬의 의미지만, 사실 인형은 사람의 모습을 본떠 만든 물건이죠. 따라서 “인형같다”는 표현은, 원형(사람)보다 가짜같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요. 반대로 인형을 보고 “사람같다”라고 말하면, 그건 너무나 사실적인 밀랍 인형이라 놀랍다—정말 사람과 구분이 안 된다는 극찬이 되겠지요. 하지만 실제 사용하고 있는 용법으로는 결국 인형이든 사람이든, 서로를 닮았다며 칭찬하거나 감탄할 때는 원래의 본질을 벗어날 만큼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원형을 넘어서는 어떤 매력인 셈이지요.
비슷한 예가 있어요. 요즘은 놀라운 영상미를 자랑하는 작품들을 보고 “CG같아!”라고 말하잖아요?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화려함이나 비현실적인 규모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말이죠. 즉, ‘CG같다’는 말은 “너무나 화려해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CG 장면을 보면, 우리는 진짜같다며 극찬합니다. 판타지 영화 속 드래곤이 불을 뿜어도, 그 디테일이 완벽하면 “와, 이건 현실 같네!”하고 보게 되죠. 결국 CGI가 현실에 가까운 수준으로 구현된 것을 보고 우리는 최고 찬사로 이 말을 사용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CG같다”와 “진짜같다”라는 표현이 서로 역설적인 찬사라는 것이죠.
비현실적임을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현실 수준의 정교함을 요구한다는 모순이 숨어 있습니다.
그럼 영화같은 내 인생은요?
저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말도 비슷하게 생각해보자고요.
막연하게 생각해보면, 영화의 기승전결과 같이 극적 요소가 가득한 타임라인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해요. 모든 영화는 극적 요소가 필수적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장르에요. 내 인생이라면 호러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기왕이라면 좀 더 근사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비트코인처럼 변동성이 클 필요는 없거든요. 그건 너무 스트레스니까요. 성향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재미가 없더라도 그 편이 더 장수할겁니다. 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생존에 도움이 될 뿐더러 영화적인 내 인생의 재미를 위해 그대로 두겠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애초에 영화같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현실 속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지금까지 스쳐간 많은 사건이 사실은 “영화같았”던 순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재난영화처럼 정신없이 휘말린 일도, 뒤늦게 보면 코미디 같을 때가 있잖아요. 때론 이런 관점 덕분에 내 삶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주인공이라 여길 때, 평범했던 하루가 남다르게 보이곤 합니다. 수많은 우연이 괜한 것 같지가 않다고 느끼게 돼요.
자 그럼 정리해봅시다.
위에서 언급했던 인형같고 CG같은 모든 것이 본질을 벗어날 정도의 완성된 칭찬이라면, 역시 영화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잘 뜯어보면 그 안에 영화처럼 상징도 숨어있고, 말 한마디에 비수를 숨겨 날리는 자객들도 있으며, 드레곤 같은 친인척의 불을 뿜는 명절 잔소리와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혼이 느껴지는 나비떼도 있습니다. 친구의 의리와 또다른 지인의 배신이 스릴러처럼 숨어있기도 하고,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는게 없어보여요.
우리 멀리서 바라보자고요. 영화같은 인생을 더 리얼하게 경험하려면 한발 떨어져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시점이 우리가 영화를 영화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점이에요. 심각해지지 말고 우리, 영화 봅시다.
여기서 제 영화보는 취향은 이렇습니다.영화같은 인생 말고, 그냥 영화. 인생같은 영화 말고, 영화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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